• 최종편집 2020-04-08 (수)

학정(鶴亭)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

“푸른 대나무 그 절개 한층 그립습니다”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0.02.13 15:30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선생님!
무등산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 아직 차가운데 북풍의 하늘에 얼어붙은 땅속에 어찌 그리 황급히 혼백(魂魄)을 날리고 묻고 싶으셨습니까? 오매불망(寤寐不忘) 회복하시기를 갈망하던 사랑하는 가족과 제자들, 열렬한 벗들의 간절한 기도를 끝내 뒤로한 채 어디로 바삐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까? 한줌의 재로 화하여 떨리는 손으로 땅속에 묻던 그날은 하늘도 슬픈듯 잔뜩 찌푸렸습니다. 고향 선영(先塋)의 맑은 하늘과 바람,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 실컷 누리시는지요? 아니 보이기라도 하시는지요? 짧은 한 번의 인생여행을 마치고 멀고 먼 하늘나라 영원한 여행길 어디에서 몽필생화(夢筆生花)의 꿈을 꾸고 계십니까? 선생님과 함께 했던 인생여행길, 사랑과 정으로 진하게 덧칠해진 기억의 흔적들 어느 것 하나 지울 수 있는 때와 장소가 없으니 황망한 슬픔 가눌 길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선생님께서 마지막 가녀린 숨을 유지하신 동안 다녀간 친구를 기억하시는지요? 그분은 바로 선생님께서 끝까지 기다리신 오랜 절친 중국 서법가 유정성(劉正成) 선생이십니다. 2018년 광주시립미술관 초대전, 선생님의 생애 마지막 전시가 된 ‘예결금란(藝結金蘭) 이돈흥 유정성 춘수모운전(李敦興 劉正成 春樹暮雲展)’에서 함께 수작들을 펼쳐 보이셨지요. 먼 길을 달려온 이역(異域) 친구의 손을 잡고난 뒤 그날 밤 숨을 거두셨으니 금란지교(金蘭之交)의 감동적 생애 참으로 가슴을 울립니다.
또한 1975년 처음 서예원을 열어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부터 45년 동안 가르침을 받은 경향각지의 많은 제자들, 삼문전(三門展)의 벗들과 국제서예가협회 회원들은 선생님의 타계 소식에 모두 통곡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 이제 빌릴 수 없으니 그 슬픔 이제 서로가 닦아줘야겠지요?
우리의 영원한 선생님!
“옛날에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며 의혹을 풀어준다”했으니, 다행히 우리들은 참 스승이 있었습니다. 말씀보다는 손수 실천과 신념으로 보여주신 강단과 예술정신은 따라서하기 버거운 것이었지만 가슴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잠시 바람에 흔들리고 흐릿해진 이정표를 꼭 붙잡고 보겠습니다. 역사에 새겨놓은 선생님의 정신을 어찌 잊겠습니까?
2016년 선생님 고희전(古稀展)에서
“붓의 노예로 살았던 세월 아득하다
이제야 상전노릇
할똥말똥
나는 오늘도
가을의 석양 하늘가에 서서
원교(圓嶠), 창암(蒼巖)께서 이루었던
동국진체(東國眞體)
신 동국진체(新 東國眞體)를 꿈꾼다”
라고 읊조리시고, 붓을 잡은 지 50년이 되어서야 붓을 조금 다룰 수 있다하시니, 실로 지난한 서예의 길 얼마나 노력하셨을까? 짧은 시간 가까이서 지켜보고도 아직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가에서 ‘신 동국진체’를 꿈꾸시는지요?
 불과 두 달 전쯤 되는 작년 11월 29일 선생님은 병중에 ‘제43회 학정연우서회전’ 개전식을 찾으셨지요. ‘일편심(一片心)’이라고 남긴 작품이 생애 마지막 절필작(絶筆作)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스승이신 송곡(松谷) 선생님께 받은 ‘일심(一心)’ 휘호를 좌우명으로 삼고 서탁 위에 걸어두셨는데 ‘일편심(一片心)’ 절필작을 남기셨으니, 운명의 신이 이끌었단 말입니까? 이제 무덤 위 삼경(三更)의 달빛만 선생님의 ‘일편심’을 비춰줄 뿐이니 이 쓸쓸함, 이 서글픔 어찌해야 합니까? 
참으로 대단한 선생님!
한 예술가의 인생은 예술작업 하나만으로도 벅찬 인생을 꾸려야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대단한 일들을 이룩하셨습니다. 학정연우서회를 이끌며 43회의 ‘학정연우서회전’, 420회의 ‘연우회보’ 발간, 38회의 ‘청소년서예대전’등과 국제서법예술연합 호남지회를 이끌며 25회의 ‘한중서예교류전’을 주도하고, 국제서예가협회 회장으로서 역할 등 한국서단의 역사에 기록될 수많은 업적을 쌓으셨습니다. 어깨를 누르던 무거운 짐들 이제 홀가분하게 내려놓으셨는지요? 진흙땅 속에 발이 묶여 아직 풀지 못한 한이 있다면 꿈속에 꼭 나타나 지남(指南)하여주십시오.
벌써 그리운 선생님!
여섯시면 어김없이 이르시던 선생님의 서실 동창에는 여전히 아침 해가 떠오르고, 묵향은 그윽합니다. ‘쓰면 는다’는 선생님의 말씀만 묵묵히 감도는데 선생님의 그림자만 보이지 않습니다. 벌써 그리운 선생님! 선생님 홀로 ‘몽치학(夢癡鶴)’이 되어 서녘 구름 속에 계시니 그나마 남은 선생님의 유품으로 향훈을 느껴야만 합니다. 들녘에 향기로운 풀꽃들이 만발하고 푸른 대나무 그 절개를 한층 뽐낼 선생님의 고향 담양에 선생님의 서예기념관이 지어져 작품과 유품들이 전시된다하니 다행스럽고 기쁜 마음 교차하고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손꼽아 기다려집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노래 무덤 앞에 늘 들릴 것입니다.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푸르른 저 별빛도 외로워어라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은 언제나 모습 꿈속에 있네……”
편히 잠드십시오!
                                                    불초제자  이 선 경 곡배
 
지난 1월 18일 별세한 서예가 학정 이돈흥 선생의 제자가 애끓는 마음을 담아 추모글을 보내왔습니다. 타계 한달을 앞두고 선생을 기리면서 싣습니다. 선생은 원교(圓嶠) 이광사, 추사(秋史) 김정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학정체(鶴亭體)’라는 독자적 서체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편집자 주>

태그

전체댓글 0

  • 6646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학정(鶴亭)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