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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연예 검색결과

  • 트와이스 사나, 일본 연호 변경 심경글 두고 네티즌 갑론을박
      그룹 '트와이스' 일본인 멤버 사나(23)가 일본 연호 변경과 관련 심경을 남긴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4월 30일 사나는 트와이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일본 연호와 관련해 일본어로 "헤이세이 태생으로서, 헤이세이가 끝나는 것이 어쩐지 슬프다. 헤이세이 수고했다"고 적었다. 해당 글의 한국어 번역은 따로 작성되지 않았다.   이후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이를 두고 언쟁이 벌어졌다.   일부에서는 일왕의 이름을 딴 연호 자체가 일본 민족주의·국수주의와 관련이 큰 만큼, 멤버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트와이스 공식 계정에 이를 언급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일본인으로서 고국 상황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적은 것 뿐, 다른 의미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사나가 '일왕 퇴위'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며 "20세기에서 21세기에서 넘어갈 때 소회를 느끼는 것처럼,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넘어가는 변화에 대해 감정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두둔했다.   한편 4월 30일이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면서 헤이세이 시대는 31년만에 막을 내리고, 아키히토 일왕의 장남이 나루히토 왕세자가 1일 새 일왕에 즉위하면서 레이와 시대가 시작됐다.    
    • 스포츠·연예
    2019-05-01

오피니언 검색결과

  • 나루히토 일왕과 레이와 시대
    지난 5월 1일 일본에서 천황 즉위식이 있었다. 이름은 나루히토(德仁), 연호는 레이와(令和)이다. 기원전 660년 일본을 건국했다는 진무(神武) 천황은 제1대이고 새 천황 나루히토는 126대이다. 지금까지 일본 천황(이하 왕)은 126명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6세기 중반부터 지금의 왕가(王家)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로부터 약 1500년간 한 집안에서 일본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일본에서 역성혁명, 즉 왕조 교체가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이다. 나라(奈良) 시대 세상을 주물렀던 불교 세력도, 헤이안(平安) 시대의 왕보다 권력을 훨씬 능가했던 귀족 가문도, 그리고 약 700년간 정권을 차지했던 무사 세력도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왕의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또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왕도 정치와 권력 싸움에 개입하게 되면 결과의 성패(成敗)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 결과 왕의 권위가 손상될 것을 우려하여 권위와 권력을 분리하였다. 그 설계자가 메이지 시대의 권력자 이토 히로부미이다. 근대 일본에서 왕은 절대 권력자라기보다는 절대 권위자로 존재했다. 일왕은 일본이 만들어낸 신이다. 1946년에 히로히토 일왕이 ‘인간선언’을 하며 신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여전히 일반인은 쳐다보기가 어려운 위치이다. 군국주의 광기가 하늘로 치솟던 1933년 태어난 아키히토는 2차 세계대전 말에는 미군의 공습으로 불과 수개월 만에 폐허가 돼 버린 도쿄로 돌아온 후 큰 충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강한 다짐을 했다. 히로히토의 아들 아키히토는 1989년 왕위에 오른 후 1991년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방문을 시작으로 중국·필리핀 등 태평양 전쟁 피해국을 대부분 방문해 사죄의 뜻을 밝히며 평화를 강조했다. 그가 지난해 12월 “헤이세이(平成)가 전쟁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다”고 한 것은 진심 어린 발언이었다. 또 아키히토 일왕은 재임 중 한국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일 월드컵 개최 확정으로 양국 관계가 정점에 있던 2001년 12월. 아키히토 일왕은 68세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간무(桓武)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놀라운 발언을 했다. 그가 헤이세이 시대의 유산으로 물려준 것은 ‘전쟁 없는 일본’, ‘평화를 추구하는 일본’이라는 메시지다. 2016년에는 스스로 생전(生前) 퇴위를 결정해 장남 나루히토(德仁)의 ‘레이와(令和)’ 시대를 열어주었다. 나루히토(1960년 2월 23일-만 59세) 새 일왕은 아베신조 총리처럼 전후 세대이다. 가쿠슈인대를 졸업하고, 1983년부터 2 년간 영국 옥스퍼드대에 유학했다. 아버지 아키히토와 스물일곱살 차이가 난다. 동안(童顔)에 국제 감각을 갖춘 50대 후반이지만 일본에서는 신세대 지도자로 여겨진다. 나루히토의 ‘레이와’ 시대의 개막과 동시에 마사코(1963년 12월 9일) 왕세자빈도 왕비가 됐다. 마사코 왕비는 외교관이자 국제사법재판소(ICJ)소장을 지낸 아버지 오와다 히사시(小和田 恒)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의 모스크바, 스위스 제네바, 미국 뉴욕, 스페인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4개 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엔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법학부로 편입한 마사코 왕비는 공부를 시작한지 1년 만에 일본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성에서 일을 시작했다.마사코 왕비의 운명이 바뀐 건 1986년 10월, 갓 외교관이 됐을 때였다. 마사코 왕비는 엘레나 스페인 공주의 도쿄 방문 기념 리셉션에서 나루히토 일왕을 처음 만났다. 마사코 왕비는 외교관 자격으로 당시 26세 왕세자였던 나루히토 일왕의 의전을 맡았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 자리에서 마사코 왕비의 당당하고도 똑똑한 매력에 빠졌다. 그에게 첫눈에 반한 나루히토 일왕은 이후 마사코 왕비에게 무려 7년의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연락, “평생 최선을 다해 지켜주겠다”며 청혼했다. 나루히토 일왕의 노력이 통했던 것인지, 두 사람은 1993년 혼인했다. 외교관이었던 마사코가 꿈을 접고 왕세자빈이 된 것이다. 일본인에게 일왕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일본인의 내면을 깊숙이 지배하는 ‘천황제’를 이해하는 것은 지일(知日)·극일(克日)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정치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었지만, 일본인들은 그들의 왕을 일본의 구심점으로 삼는다. “천황제의 숨결은 공기에도, 바람에도 길가의 초목과 돌멩이에도 배어 있구나”라고 일본 지식인이 한 말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아버지 히로히토 왕이 그랬듯이 나루히토도 새 왕도 전쟁 없는 일본, 평화로운 일본을 지킨다고 하니 두고 볼 일이다.
    • 오피니언
    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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