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2-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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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일칼럼]코로나-19와 한국인의 긍지
    지리산 양지바른 골짜기에 봄을 알리는 복수초가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매화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여느 해 같으면 마음이 봄 깊이 와 있으련만 올 봄은 그게 아니다. 간간히 흰 마스크나 검은 마스크를 쓰고 오가는 발걸음, 사회적 분위기가 무겁고 을씨년스럽다. 삶의 열차가 그대로 멈추어 선 2020년 봄 자화상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고사성어가 딱 어울린다. 봄이 와서 좋은 시절이 왔지만 아직도 상황 또는 마음은 진정 봄을 느낄 수 없다. 2019년 12월12일 중국 후베이 성 우한의 재래시장인 화난수산시장이 발생지로 지목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19(COVID-19) 역병으로 지구촌이 떨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중국 시진핑 주석은 “신종코로나와 인민전쟁을 시작 중“이라고 선포했다. 정부는 우한거주 교민들의 철수를 지난 1월31일(368명) 2월1일(333명) 2월12일(147명)) 3차에 거쳐 전세기를 투입 귀국시킨 후 정부가 마련한 충북 진천, 충남 아산, 경기 이천 임시생활보호시설에 ‘격리’하여 국내 확산 가능성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번 우리 교민과 중국인 가족을 위한 전세기를 띄운 정부의 조치에 대한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라별로 갈리고 있다. 각자 입장에 따라 생각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미국 정부의 전세기 투입에는 칭찬 일색인데, 우리정부의 같은 시도에는 일부나마 부정적이고 깎아내리려는 세력이 있음을 개탄한다. 교민 철수당시 우한 한인 회장의 “국가가 존재함을 느낀다!” 는 감회어린 말은 교민의 입장을 잘 대변하면서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나라가 나를 버리지 않고 있구나!’ 하는 한국인으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을 심정이 든다. 세계 인권선언(UDHR) 건강권에는 치료를 받을 권리, 정보를 접할 권리와 의료 서비스 제공에 대한 차별 금지, 동의 없이 치료를 받지 않을 자유 등 권리 보장이 포함되어 있다. 인권을 존중하는 정부는 교민보호는 물론, 어려움에 처한 중국에 마스크 200만개, 방호복과 보호경 각 10만개 의료구호 품을 보낸 것은 국제 규약에 맞는 당연한 조치이고, 문명국가로서 취하여할 기본 행동으로 다른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배척되어야 한다. 다행이 잠복기간 동안 격리 수용장소로 지정되어 철수교민들을 맞이한 충북 진천, 충남 아산, 경기 이천 주민들의 대승적 결단에 찬사를 드린다.이번 사태에서,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까지 중앙아시아로 소개되었던 고려인(카레이스기)들의 비극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국가가 존재함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생각해 보자. 스탈린은 한인 지식인 2500여명을 일본에 동조할 것이란 우려와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며 한인들을 공포와 정신적 공황상태를 만든 다음 강제 이주를 시행한다. 피 땀 흘려 일군 삶의 터전을 그대로 두고 블라디보스토크역과 우수리스크의 작은 마을 라즈돌로예 역에 집결시켜 총124대의 수송 열차에 17만1781명의 한인들은 강제이주를 당한다. 지붕 없는 가축용 화물칸, 혹독한 영하의 추위, 시베리아 횡단 열차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갔다. 그렇게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린 곳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6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였다.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사막지역에서 살려고 땅을 파고 토굴 속에 들어가 추위를 피해야만 했다. 오랜 강제 이주로 인해 먹지도 못하고 병이 들어 5분의 1이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시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처럼 강제 이주된 곳에서 첫 말은 “어떻게 사나”라는 부정의 말이 아니라 “이제 살았다”는 긍정의 말이었다고 한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받는 설움과 슬픈 역사를 기억해야한다.세정제와 마스크 사제기로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봄철 불어올 미세먼지도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여 마스크 수요는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스크가 ‘금(金)마스크’가 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성숙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 조치가 비교되고 있다. 다행이 잘 준비된 정부의 대응조치로 1차 철수교민 366명이 음성으로 확정돼 귀가 조치에 이어 2차 교민 조치도 이어진다. 질병관리 본부를 비롯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신 분들의 노고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이 불기를 기원하며 칠성단을 쌓고 제를 올렸던 그런 심정으로 남쪽의 꽃소식 훈풍이 확 불어 일상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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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6
  • [호일칼럼]큰 스승 법정스님이 그립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우리시대 참스승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던 법정스님의 열반 10주기를 맞아 2월 19일 길상사에서 다채로운 추모법회를 봉행한다.“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기 바란다”는 법정스님의 생전 가르침에 따라 명종, 개회사, 삼귀의, 반야심경, 종사영반(영단삼배, 헌향, 헌다, 헌공, 헌화), 길상사의 주지 덕일스님의 인사말, 법정스님 영상, 법문 등으로 소박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10년 전 “맑고 향기롭게 아쉬운 듯 모자라게 살아라”란 법정 대종사의 글을 서예족자로 만들어 나의 아들 결혼식날 선물로 준 적이 있다. 그래서 아들은 자기 방에 걸어놓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세 자녀를 낳고 잘 기르며 맑고 향기롭게 아쉬운 듯 모자라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지난해 가을에 무등산을 올랐다가 증심사 쪽으로 내려오는데 법정스님의 말씀이 적힌 프랑카드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 내용은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라는 글이었다. 무소유가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있는 생물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법정스님은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은 주어지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행복이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있고 행복이 될 수도 있지요”라고 말씀하셨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 우주의 법칙은 자력과 같아서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보람된 인생이란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행복은 소유의 비교가 아닌 존재의 확인에 있다. 비교의식 속에는 행복이 없다. 비교의식은 소유욕의 산물이다.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질만큼 가지고 누릴만큼 누리고 살던 사람이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열등감에 빠지고 더 소유하려다가 죄를 짓는 일은 다반사다. 법정스님은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우주의 질서처럼 늙거나 죽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기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지요. 죽음을 삶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확고해지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거부하려 들면 갈등이 생기고 불편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는데,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편안해 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기량 폭이 훨씬 커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커집니다. 표면을 통해서 심층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지요. 사람도 살만큼 살았으면 그만 물러나야지요. 사람이 만약 200년, 300년씩 산다고 가정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나무는 해가 묵을수록 기품이 있고 늠늠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풍상에 씻겨 추해집니다. 그만 몸을 바꾸라는 소식이 아니겠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죽음이란 조금도 두려워할 것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대신 내가 지금 이 순간순간을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는지가 우리의 과제지요. 현재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있느냐 또 이것이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에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런 생명의 일부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법정스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 갔네”라는 말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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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3
  • [호일칼럼]가족 구성원 간 경계가 무너지면
    가족신화는 진즉 깨졌다. 그럼에도 가족구성원들 각자가 경계를 침범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학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간섭은 대체로 극성이다. 심지어는 결혼한 자녀들에게까지도. 자녀부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양가 부모들이 기를 쓰고 달려든다. 어떤 모친은 근거리에서 생활하는 딸의 부부싸움에까지 끼어들었다. 결국 이혼했다. 외손자 양육권 확보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두 명의 외손자를 데리고 산다. 딸은 다른 생활권에서 찻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딸 부부의 탄생은 딸이 적극적으로 구애한 결과였다. 당초에는 서울에서 살았었다. 몇 년 뒤 친정동네로 내려와 둥지를 틀면서부터 부적현상이 발생했다. 만약 이들 부부가 서울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또는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친정의 간섭 없이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반추해 볼일이다. 물론 어린 신혼부부는 어설플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스스로 터득하고 성숙해간다. 그런데도 양가 부모가 끼어들면 피차간에 모호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결국 아내는 시댁을 상대하고 남편은 처가를 상대하는 형국이 돼버린다. 부부중심의 삶이 파괴되어가는 것이다. 혼인 전의 과도한 효자, 효녀의 모습으로 자신의 부모와 융화되어가는 기이한 현상도 전개된다. 결국 부부관계는 위기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혼인한 자녀들과 원가족과의 관계설정을 서로 잘못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흔한 일들이다. 바닷가의 조약돌도 산위에 있을 때는 모난 돌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동안 굴러 내려오면서 서로 부딪치고 또 부딪쳐가면서 둥근 또는 타원형의 예쁜 조약돌이 된 것 아닌가. 신혼부부도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품안에 자식’이라 했다. 품안에 있을 때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까르르~’웃기도 하고 예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모를 비롯한 보는 이들을 기쁘게 해준다. 하지만 미운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려고 애쓴다. 점점 독립의 길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웃음마저 사라져간다. 아이 때는 하루에 3~5백번을 웃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하루에 웃는 횟수가 3~5번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만큼 스스로 독립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도 생존의 본능에서 나온다는 설도 있다.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체득되어 갈수록 웃음이 사라져 가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가족구성은 3인에서 4인으로 이뤄지는 핵가족이 대부분이다. 가족의 순기능이 무너지면 하위체계들끼리의 부적 이합집산도 심해진다. 4인가족의 예를 들면, 부부하위체계, 부와 자녀1하위체계, 부와 자녀2하위체계, 모와 자녀1하위체계, 모와 자녀2하위체계, 자녀하위체계 등으로. 매우 작은 가족사회이지만 이처럼 부산하게 상호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런 부적관계들이 난무하게 되면 피를 나눈 가족이 생면부지의 남보다도 더 못하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제대로 치유를 못하면 가족이 해체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이는 그 가족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은 지역사회의 가장 작은 세포단위다. 우리 몸의 세포 하나가 병들면 결국 몸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한 가족이 무너지면 그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는 물론 국가까지 병들어 간다. 결국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 한 가족 병리현상의 나비효과가 일파만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적절한 가족의 경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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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2
  • [호일칼럼]‘의로운 내부고발자’ 안과의사 리원량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전염병이 창궐하면 감염된 사람들의 숫자를 축소하는가 하면, 의사들의 입을 틀어막아 진실을 묻고, 진짜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진짜 정보를 말하는 진짜 의사’는 항상 있다. 2003년 중국 공산당이 숨기던 사스 창궐을 외부에 알린 고발자는 (軍)병원 의사 장옌융이었다. 그는 자신이 확인한 사스 확진자만 60명인데도 당국이 ‘12명뿐’이라고 거짓말하는 걸 보고 해외 언론에 진실을 제보했다. 이후 감금과 가택 연금을 당했지만 한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 정치를 보고 거짓말하는 게 가장 쉽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거짓말하지 않을 것” 이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의사가 같은 중국에 있었으니 그가 바로 중국의 우한중심병원의 안과 의사 리원량(李文亮)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처음 폭로했던 리원량이 2월 7일 오전 2시58분 경 결국 숨졌다고 우한중심병원이 밝혔다. 그는 34세 한창나이에 우한 폐렴 환자들을 돌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이원량은 병원을 찾은 환자 7명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것을 파악했다. 이 환자들이 모두 ‘화난 수산물시장’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환자들을 병원 안에 격리했다. 그는 감염증 발병 초기인 지난해 12월30일 동료 의사들과의 온라인 단체 대화방에 “화난 수산물도매시장에서 사스 의심 환자가 발생했다”며 “진료할 때 보호 장비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동료 의사들도 마스크 등 보호 장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중국 정부의 대처는 달랐다. 리원량도 당시 정부 지침대로 보호 장비 없이 진료하다 감염됐다. 중국 정부는 사회 혼란 우려 등을 이유로 감염병의 발생과 확산 사실을 감추고 축소하는 데만 급급했다. 나흘 뒤인 1월 3일 우한시 경찰이 리원량을 찾아와 우한시 공안국 이름의 훈계서를 건네며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거짓 소문을 유포해 사회 질서를 심각하게 해쳤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문서였다. 리원량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린 경고장에는 ‘무례한 태도로 고집을 부리며 불법행위를 계속한다면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알겠는가’라는 당국의 질문 아래에 ‘알겠다’는 리원량의 친필이 쓰여 있다. 그러면서 공안당국은 그를 유언비어 유포자로 지목하고 “거짓 정보를 퍼뜨려 사회질서를 해쳤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침묵을 강요했다. 리원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존재와 위험성을 처음 외부에 알렸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은 의사이다. 진실을 이야기해도 수난을 겪는다. 이게 중국사회다. 어찌 중국뿐이겠는가.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이 백성을 속이면 오래 못가든지 쓰러지기 마련이다. 의로운 내부 고발자였던 리 씨는 격리치료 중에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실이 중요하다. 건강한 사회는 하나의 목소리만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사회로 치면 최전방에 선 의사들이 바이러스 침입을 알리면 정부는 공중보건 시스템을 가동해 지원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강한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중국 정부는 리 씨가 경고하기 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전방에 선 의료진에게 침묵을 강요해 초기 방역에 실패했고 이는 세계가 발칵 뒤집히는 더 큰 재앙으로 돌아왔다. 리원량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이 낮다”며 사태 축소에만 힘을 쏟는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 결국 중국 정부는 1월21일 신종 코로나의 ‘사람 간 전염’을 인정하고 이틀 뒤엔 우한 지역에 봉쇄령을 내렸다. 바이러스가 중국 전역을 넘어 이미 전세계로 퍼져나간 뒤였다. 발병 초기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축소·은폐에 급급하는 바람에 감염병 통제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이다.중국의 한 네티즌은 “우리를 죽이는 건 박쥐가 아니라 정부가 강요한 침묵” 이라고 했다. 리원량 사망 후 ‘언론 자유를 원한다’는 등 해시태그(#)가 달린 SNS 글을 삭제하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하고 있다. 이제 의로운 의사 리원량의 입은 영원히 닫혔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고 힘과 힘을 합하고, 마음과 마음을 아우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늑장 대처를 직접 목도한 중국인민들은 이번 사태를 천안문·홍콩사태와 함께 엮으면서 자유를 향해 가고 있음을 중국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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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1
  • [호일칼럼]순천 금전산 둘레길 조성해야
    봄을 상징하는 매화가 피고 있다. 붉게 피는 홍매화를 비롯해 청매, 백매가 앞 다투어 피고 있는 남쪽지방에는 꽃놀이 상춘객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더욱이 전남 순천시 낙안면 금둔사에 피고 있는 홍매화 길에는 벌써부터 붉게 핀 홍매화를 보러온 상춘객들이 붐비고 있다. 금둔사의 납월홍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다. 금둔사 홍매화는 납월매로 원목은 20년 전 노령으로 고사하였으며, 현재 수령이 24년된 매화나무 6그루가 잔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금둔사 지허 스님은 어린 홍매를 곳곳에 심고 있어 경관이 미화되고 있다. 특히 낙안읍성과 낙안온천 그리고 금전산을 찾고 있는 등산객과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금전산 둘레 길을 조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들은 허석 순천시장의 공약사업을 상기시키면서 홍매화 피는 길을 연상시켰다. 또 “홍매화 피어나는 낙안면 조성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며 “이 사업을 추진할 때, 금전산 둘레 길도 함께 조성하고 그 주변에 홍매를 심는다면 더욱 빛나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토요일이었다. 필자는 금강산의 한줄기를 옮겨다 놓았다는 산,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위치한 금전산을 찾았다. 해발 668m로 조계산에서 뻗어 나온 한 지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며 고동산을 거쳐 일으킨 바위산이다. 옛 이름은 쇠 산이었으나 100여 년 전 금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금으로 된 돈 산이다. 그러나 실은 불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처의 뛰어난 제자들인 오백비구(혹은 오백나한)중 금전비구에서 산 이름을 따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금전산 일대에는 석산 경관이 나타나 우수한 지형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마치 금강산의 한줄기를 닮은 모양새를 지녔다. 정상부의 서쪽 면이 모두 바위로 뒤덮여 원효대, 의상대, 형제바위, 개바위 등 기암들이 도열해 낙안의 고유 경관을 이루고 있다.따라서 금전산 등산로는 동서로 길 게 뻗은 능선 길과 정상에서 남서쪽 상송리로 내리뻗은 금강암계곡길 등 세 가닥이 주를 이룬다. 금전산은 낙안읍성의 진산으로 양호한 석산경관을 형성하고 있다.그래서일까? 순천시 낙안면은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낙안읍성을 기점으로 낙안온천, 금전산, 고동산, 백이산, 존재산, 제석산, 오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게다가 낙안평야를 지니고 있어 수많은 농산물은 물론 깊은 산에서 생산된 임산물까지 먹거리가 풍부하다. 예부터 볼거리, 먹거리, 쉴거리가 풍부한 지역은 문화의 꽃이 핀다고 했다. 다시 말해 의, 식, 주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역은 도시가 형성되고 편의시설을 비롯한 문화생활이 번성한다고 했다. 순천시 낙안면의 역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이 지역은 많은 문화유산이 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항일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다. 뜻있는 시민들은 말한다. 금전산 둘레길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요즘처럼 미세먼지와 탁한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을 찾아 힐링 문화를 즐긴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 작은 도시를 형성하고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낙안을 상징하는 산, 금전산 둘레 길에 홍매화 피는 길이 조성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낙안음성은 국제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낙안읍성을 중심으로 한 주변경관과 환경 그리고 편의시설 등이 미비하다. 세계 속의 관광지로 우뚝 서려면 각종 편의시설은 물론 주변경관과 환경 가꾸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세계문화유산등록에도 심혈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더불어 관계부서는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별해서 국민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 판단으로 인해 국민혈세가 낭비되고 주민간의 불협화음이 조성된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일파만파로 번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삼천리금수강산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인 전남 순천시 낙안면은 관광자원을 비롯해 힐링 문화와 건강산업과 등 각종 산업문화의 발전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불재에서 금전산을 바라보면서 동쪽을 돌아 조계산자락을 잇고 고동산과 백이산 등 주변의 산세를 산책하는 둘레길 조성은 바람직한 사업이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금전산 둘레길 조성사업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전남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 둘레길 조성사업과 함께 홍매화 피어나는 건강길이 기대된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알려진 낙안온천수의 활용가치도 연구대상이다. 미끈하면서도 부드러운 온천수는 낙안지역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온천수의 성분과 효능에 관한 과학적인 분석을 내놓아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 오피니언
    2020-02-10
  • [호일칼럼]신종 코로나 공포 슬기롭게 극복하자
    사스, 메르스에 이어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를 전염병의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입춘이 지났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에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너무 무겁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정부와 각 지자체에 비상이 걸려 있다. 낯선 질병이 짧은 시일에 지구 반대편까지 전파되는 상황을 보면서 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 시에서 시작되어 ‘우한 폐렴’이라고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백신과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불안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자체의 위험성도 있지만 감염자나 의심환자 발생 등 거짓 정보를 고의로 꾸며 허위사실을 유포해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경찰은 사이버 대책상황실을 운영해 질병관리본부 등 관계기관과 공조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허위 조작하여 정보 유포하는 행위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 최초 생산자뿐만 아니라 중간 유포자까지 검거할 계획이다. 허위 조작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는 국민의 안전을 저해시키며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므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또한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포가 세계로 확산하면서 전염병이 처음 시작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아시아 지역에선 중국인에 대한 차별이, 유럽 등 서구에선 동양인 전반에 대한 혐오감까지 형성되어가고 있다. 베네치아에선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현지 어린이들이 침을 뱉는 사건이 발생했고, 폼페이 등 주요 관광지에서 중국인 입장을 거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WHO 권고 사항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입국 금지’라는 대응마저 등장하고 있다. 너무 온정에만 호소하는 인도주의도 문제지만, 근시안적인 실리를 앞세워 혐오와 차별을 하는 것도 경계해야겠다.우리나라도 처음에는 신종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과 인근 지역 교민들이 격리 보호시설인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도착한다는 소식에 지난 1월 29일 아산 주민들이 진입로를 막는 등 수용반대 시위를 펼쳤었다. 그러나 1월 31일 주민들은 교민들을 태운 전세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집회장소를 정리했으며, 일부 주민들은 환영하는 내용의 손 팻말을 들고 나서기도 했다. 충북 진천 주민들도 “수용을 막지 않겠다”며 반대 주장을 접었다고 한다. 재난 대처를 위해 불가피했던 정부 조치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한 두 지역 주민들의 결단과 자발적인 성원에 박수를 보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비말감염을 통하여 병균을 옮긴다. 감염자가 기침·재채기할 때 침 등의 작은 물방울에 바이러스가 나와 옆 사람의 코로 들어가 감염된다. 이 비말감염을 피하려면 감염자로부터 최소한 2m 이상 떨어져야만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시민들 역시 마스크를 써야 하며, 기침 예절과 손 씻기 등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고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한다.기침, 발열 등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으면, 지역 보건소나 질병관리본부(1339)에 먼저 문의하여 지침을 받는 등  매뉴얼을 이행하고 능동적인 협조를 해야 한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건강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더 이상 퍼지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물론 무엇보다도 단 한 사람의 생명도 허투루 잃는 일이 없어야겠으며, 시민들의 삶에도 생동하는 봄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매서운 겨울 추위도 따스한 봄 햇살에 물러가듯이,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뜨겁게 노력하면 신종 코로나의 위기도 슬기롭게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 오피니언
    2020-02-09
  • [호일칼럼]‘국회개혁’은 왜 시작도 안 하는가
    국정은 내팽개치고 혈세로 관광성 외유는 자주하고 상습적으로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는 무단불참하고도 그 많은 봉급을 꼬박꼬박 챙기는 불성실한 국회의원, 그 것도 특권이란 말인가. 부끄럽고 창피하고 무책임하다. 그러면서도 국회개혁은 외면할 것인가. 그렇게도 특권을 내려놓기가 어려운가! 정의당은 심상정 대표의 국회의원 세비 삭감 등 국회개혁 제안을 이 번 4·15 총선 공약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그 나마 다행이다.  정의당과 심상정 대표가 계속해서 국회개혁에 앞장선다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양당은 물론이고 여야 국회의원 모두 깊이 반성하고 자각하여 양심으로 국회개혁에 앞장서기를 촉구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아무리 파렴치하게 버티고 버티어도 국회개혁은 이루어진다. 그게 시대의 흐름이고 국민의 희망이고 권리다. 무엇보다 국회개혁이 먼저다. 국회의원이 특권을 내려놓아야 평등사회고 공정사회다. 왜 국회개혁은 시작조차도 안하는가. 검찰개혁이나 사법개혁보다 더 시급한 개혁이 국회개혁이 아닌가! 검찰개혁은 요란을 떨면서도 왜 국회개혁은 미적대고 있는가. 국회의원 밥그릇 챙기기 위한 특권이란 말인가. 국회는 국민이 나서야 정신 차리겠는가!세금 내는 국민은 울화가 치민다. 가슴도 답답하다. 한 숨만 나온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특권을 누리는 귀족이 아니지 아니한가. 국회의원부터 특권을 내려놓아야 불평등 불공정 사회를 끝낼 수 있다. 온 국민이 행복하여야 한다. 그게 평등 정의 공정사회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왜 국회개혁은 손을 놓고 있는가. 왜 시작도 안하고 미적대고만 있는가. 국회개혁은 국회의원의 밥그릇 챙기기에 걸림돌이란 말인가. 그러고도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구걸할 것인가. 뻔뻔하고 파렴치하다. 너무 무책임하지 아니한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멀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알면서도 국민을 무시하고 있는가. 어찌 원종건과 같은 파렴치한 데이트 폭력범을 총선 영입인사 2호로 그렇게도 당당하고 요란스럽게 발표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국민을 무시한 무책임한 민주당의 민낯인가. 그러고도 책임지는 사람 없으니 한심하다. 민주당은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총선이 코앞이다. 기다려 보면 알 것이다.    4·15 총선 전에 반드시 국회개혁을 하여야 한다. 국민의 명령이고 채찍이다. 만약 국회개혁을 거부하면 온 국민은 현 국회의원을 모조리 낙선하도록 ‘국회개혁범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여의도에서부터 전국적으로 촛불을 다시 들어 온 국민의 힘으로 썩고 구태의연한 국회를 개혁하여야 한다. 그게 국민의 권리이고 의무이다. 심상정 대표의 ‘국회개혁 제안’은 공허한 메아리인가! 심상정 대표는 진심으로 국회개혁 제안을 했다면 국민이 바라는 희망의 불씨를 계속 살려 끝장을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다행히 세비 삭감 등 최고임금제를 총선 공약으로 발표하였으니 전폭적으로 환영하면서 많은 국민은 응원할 것이다. 심상정 대표가 심혈을 기울여 해야 할 일은 바로 국회개혁이다. 심상정 대표는 국회의원 수에 매달리지 말고 국회개혁에 온 몸으로 정진한다면 심상정 대표는 물론이고 정의당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이다.   민주당은 왜 검찰개혁은 페스트 트랙으로 ‘4+1 협의체’를 만들어 강하게 밀어붙이더니 국회개혁은 왜 시작도 안하고 나 몰라라 하는가. 그러고도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국민은 현명하다. 국민은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국정은 팽개치고 삭발정치, 단식정치, 무책임한 폭로정치, 막말정치, 길거리 장외정치로 국민 혈세를 낭비하면서 언제까지 투쟁으로 국정을 마비시킬 것인가. 그러고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만 너무 하지 아니한가. 한국당이 여당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비판하고 강력한 투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구태는 과감히 버리고 대화하고 협치하여야 한다. 정국 불안은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 양심이 있어야 인간이고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국민의 지도자다. 심상정 대표에게 다시 묻고 싶다. 국회의원 세비를 삭감하고 보좌진을 감축하자는 등 국회개혁 제안은 진정성 있는 제안이었나, 아니면 우선 국회의원 수를 확대하여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국민 속이기의 달콤한 꼼수에 불과하였나, 시원하게 답하여야 할 것이다. 심상정 대표의 제안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국민이 바라는 획기적인 제안이다. 국민도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제안으로 환영하면서 반갑게 받아드리고 있다. 이제 실천만 남았다. 심상정 대표의 셀프 세비 인상, 셀프 외유성 출장, 제 식구 감싸기를 금지하는 ‘셀프 금지 3법’은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식물국회, 동물국회, 난장판 국회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혈세낭비 국회를 개혁하여 새롭게 출발하여야 한다. 심상정 대표의 제안에 보다 구체적으로 추가하여 실질적이고 국민이 원하는 국회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은 무조건 내려놓아야 한다. 면책 특권은 보장하여야 한다. 그러나 무제한 보장이 아니라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한 경우에만 인정하고, 개인의 사생활이나 신상을 폭로하는 무책임한 발언은 반드시 법의 처벌을 받도록 강화하여야 한다. 구태의연한 ‘아니면 말고’ 식의 쇼 정치는 이제 그만 하여야 한다.국회의원 수는 200명으로, 보좌진은 5명 이내로 하여야 한다. 그게 국민과 함께하는 진정한 국회다.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평등하고 공정한 민주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비례대표제는 폐지하여야 하나 어려우면 당의 선심이 아니라 각 분야의 최고 전문 인력을 영입하여 본래 취지를 살려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선거구는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소선구제를 폐지하고 중대선거구로 전환하고, 기초의원은 당장 폐지하고 시 도 광역의원은 그 수를 축소하고 전문인력 중심으로 최소한의 출석 수당을 지급하는 명예직으로 하여야 한다. 국회개혁으로 공정하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만들어야 국민이 행복하다.
    • 오피니언
    2020-02-06
  • [호일칼럼]4·15 총선에서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선거철이라는 것을. 서로 잘났다고 난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이나 상대 정치세력들을 사정없이 쳐대고 있다. 어떤 거대야당은 말끝마다 정부여당 치기에 바쁘다. 과연 자기들은 뭣을 했다고 그럴까. 특히 지난날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의 피비린내 나는 총·칼바람은 지독했잖은가. 무소불위였다. 누구나 아는 총·칼의 난무였다. 그럼에도 원죄를 갖고 있는 그들이 상대를 사정없이 패대기치고 있다. 그들이 휘두를 땐 감히 말 한마디도 하기 어려웠다. 자연법 위에 군림했기 때문이다. 헌법은 있으나 마나였다. 그들의 원조세력들은 사형선고를 내린지 하룻만에 집행해 버린 적도 있었다. 유례를 볼 수 없었던 광기였다. 이런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들이 지금도 망나니 춤을 추고 있다. 그 꼴을 바라보는 양심세력들은 할 말을 잃고 있다. 하도 어의가 없어서. 그런데 망둥이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고 요즘에는 피리 춤을 추는 꼬락서니도 있다. 자칭 진보 논객이었다는 작자가. 물론 대부분은 그를 위장 진보를 즐기다가 본래대로 돌아갔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 상판은 날마다 게거품이다. 자신의 존재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그런데 그것도 큰 착각이다.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기에. 개똥위에 떨어진 한 조각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눈(雪)이러니 생각하기에 말이다. 저질들일수록 착각 속에 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저질이기에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족속들일수록 대의명분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소리들은 아름답지 못하다. 언뜻 보기에는 대의명분 속에 마치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집단의 이익만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속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희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늘이 우리 모두에게 준 선물인 인권은 거기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천부인권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정성이 깃들 때 그 모습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것.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자신들이 잘 못 한 것은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넘어간다. 자신들로 인해 남이 피해를 당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한다. 언제나 자신들의 행위는 대의명분에 속한다. 17세기 철학자 파스칼은 그의 유고집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갈대이지만 사유할 수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비참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똑바로 생각할 줄 안다. 그래서 인간은 위대하다고 한다. 갈대가 쉽게 꺾일 수 있는 것처럼 인간 역시 연약하다. 하지만 온 우주가 인간을 약간의 물방울로 때로는 한 줌의 불로 죽인다고 해도 인간은 훨씬 더 고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의 실존을 알고 있는 인간은 우주보다 더 우월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고귀하고 존엄하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대의명분을 부르짖으면서도 자신의 부당함을 모르는 족속들. 어떤 것이든지 자신과 아류만을 위하는 범위 내에서만 대의명분이라는 탈을 활용하는 교활한 천민의식. 이런 천족들은 이번 4·15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 오피니언
    2020-02-05
  • [호일칼럼]설날, 콩쥐 며느리와 가짜 깁스 소동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깨고요~~’ 설 노래 부르며 세배길, 눈길 걷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 땐 눈이 많이 와 그야 말로 설(雪)날에 설날이 왔다. 할머니는 설 며칠 전부터 붉은 치마, 색동저고리 만드느라 바느질하시고 뜨끈한 아랫목에는 기름에 튀길 흰 찹쌀 반죽이 바삭하게 말려지며 한과가 되길 기다리고 누워 있었다. 하얀 벼 튀밥을 밥상에 쌓아놓고 식구들 모여 불발된 뉘를 가리는 일, 떡치는 소리, 설날의 설레임은 그렇게 고조되었다. 돌아보니 느림과 부족함의 일상이 설날을 기다리는 풍족함을 가져다주었지 싶다. 설 명절을 쇠기 위해 밤새 전부치고 생선 굽고, 나물 무치는 어머니의 분주하지만 여유있는 얼굴! 맛난 것을 만들고 새 옷 짓는 일은 농번기 뙤약볕에서 하던 일에 비해 수월해서 일까? 그리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일까, 필자 또한 거부감 없이 설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시어머니께서는 며느리들에게 비교적 생각이 열린 분이셨기에 설날 모이는 일이 좋았고 오랜만에 동서들 끼리 담소 나누며 음식 만드는 일, 커나가는 조카들 보는 일들이 흐믓한 맘이었다. 그런데 요즘 명절 증후군 운운하는 신 며느리들의 심신 고충을 호소하는 글들이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대가 변했음이다. 서양문물에 정신은 복잡하고 얍삽해졌으며 육체노동은 정신적 노동으로 이동, 허약체질들이 많다. 그렇다고 가족 간 사랑과 유대감을 공유할 수 있는 민족고유 명절마저 그 의미가 퇴색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가? 추석, 설 딱 두 번인데…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 끝에 이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니 격세지감이다. 네티즌들을 통해 명절로 인한 며느리들의 대 소동을 알아보자.   "명절만 되면 콩쥐처럼 부려먹는 시어머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차례 끝나고 친정 가려했는데 시누이한텐 가라면서 며느리 붙잡는 시부모 얄 밉네요""시댁 스트레스 안 받아주는 남편 꼴도 보기 싫네요" 그야말로 ‘시월드’ 혐오 일색이다. 어떤 워킹 맘은  "시댁에서 무급으로 일하느니 당직해서 유급으로 일하겠다" 라며 배금주의적 특근을 자처하는 팁을 소개하는가 하면 ‘가짜 깁스’가 명절에 며느리 아이템으로 추천되었는데 이것을 실행한 한 이용자는  "명절에 환자 코스프레 할 때 잘 썼다. 가짜 깁스하고 덕분에 집에서 푹 쉬었다"라며 후기를 올렸다. 얼마나 쉬고 싶고 가기 싫으면 가짜 깁스를 하고 시댁을 속여야 했을까? 이해하려해도 나만 아는 이기적행동과, 가족에 대한 애착 없음이 안타깝다. 한편으로 얼마나 일했길래 콩쥐부리듯이라 느낄까. 고집스런 일부 시부모와 융통성 없는 몇몇 남편들 멘탈약한 며느리가 빚은 총체적 문제이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뒤르껭(Emile Durkheim)같은 사회학자들은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상태라며 우려를 표명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가치관이 혼재된 사회인식과 산업화에 기인한 사회구조의 변화, 사회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는 국가의 제도, 무엇보다 오냐오냐 하며 자녀를 귀하게 키우고 돈만 대주면 다인 가정교육 부재의 사회현상 등이 곳곳에 나타나 우려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시집 갈 때 친정엄마가 일러 주신 말이 떠오른다. "시부모가 낳아 준 남편은 좋다고 데리고 살면서 그 남편 낳아준 시부모한테 잘못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된다"하셨다. 친정아버지께서는 "효란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으뜸이다. 시부모 마음을 편하게 해 드려라"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그 말씀이 참으로 옳다는 생각이 들어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며 살아 왔다. 게다가 어릴 때 얼음 깨며 개천에서 빨래하고 축축한 짚불 때 밥 짓느라 연기에 눈물 철철 흘리던 시절을 지낸 터라 가스불에 가전제품과 함께 하는 며느리 역할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요즘 신며느리가 읽는 다면 꼰대적 발언이라 비난 할 수 있다. 그래도 좋다. 역사적 과정을 이야기하며 더 나은 미래를 열어야 하지 않겠나? 하여 친정 부모의 안위는 친정 오빠올케들에게 맡겼기에 시집에 충성할 수 있었던 그 때 그 시절을 인정하며 자녀가 한 둘인 요즘의 가족 관계에서 가부장적 남성위주의 관습은 지양되고 바뀌어야 한다는 다음의 주장에 동의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한 게시자는 "여성은 명절 당일 아침 반드시 남성의 본가에 가서 남성의 조상님께만 차례를 드려야 한다" 라며 “1년에 두 번인 명절에 양가에서 번갈아가며 차례를 지내는 정책, 캠페인을 시행해 달라”고 주장했다.결국 지금까지의 명절 풍습만으로는 딸만 있는 가정은 쓸쓸한 명절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며느리도 사위와 함께 한 번의 명절은 친정집에서 차례를 지내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명절이 신 며느리들의 자유의식을 압박하고 구속하는 풍습에서 공정한 풍습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공동체적 마인드 보다 개인주의, 자유주의 학교교육을 받은 신세대들을 탓해 무엇하리… 옛 풍습에 절어 살던 옛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발휘하여 변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균형적 새 틀을 짜야 한다. 또한 명절음식은 간소화하되 전 부치기, 설거지 같은 단순한 일은 남자들이 맡아준다면 워킹맘 신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 없이 우리고유의 미풍양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며느리를 콩쥐처럼 부린다고 여기거나 가짜 깁스를 해 명절에 시댁을 회피하는 신 며느리 소동은 사라지리라.  
    • 오피니언
    2020-02-04
  • [호일칼럼]산다화 피는 거리를 걸어보자
    그는애기동백이다산다화 웃음이다 그는처연한 웃음허허로이 웃어대며눈보라에 맞서고 있다 그는차가운 거리쓴웃음 터뜨리며얼음소식 망가뜨리는흔하디흔한 이야기꽃이다 그는허탈 꽃 피어나는 겨울이야기 뒤엎고싱싱 꽃 피어나는 겨울이야기 밭이다 그는믿음 꽃 맺고 신뢰 꽃 피어그리움을 담는붉게 물든 정겨운 꽃애기동백이다 산다화 웃음이다(필자의 '산다화 웃음' 전문) 겨울이 가고 있다. 겨울을 상징하는 꽃, 산다화 피는 거리를 걸어보자. 푸른 잎사귀 속에서 빨갛게 피어 꽃잎까지 흩날리는 풍광이야말로 겨울속의 훈기가 아닐까 싶다. 혹독한 냉기를 쫓아내면서 훈풍을 일으키는 소통문화를 심는 것이다. 이제야 사회적 봄바람이 부는 것 같다. 꽃피고 새가 울면 어김없이 찾아온다던 봄이건만 금년 봄은 어찌나 더디게 오는지, 모두가 봄 타령이다. 그 봄을 기다리는 우리네 국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봄기운을 느끼며 얼었던 삶을 녹이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국민대다수는 꽁꽁 얼어붙었던 동장군을 돌려 세우면서 한해가 새로 시작되는 봄을 맞이하는 설레임에 가슴졸이고 있다. 특히 서민층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따스한 봄볕을 기다릴 것이다. 몇 달 있으면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총선이 시작될 것 같다. 새롭게 뽑으려는 국회의원들, 그들에게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당리당략에만 치우치는 국회의원과 국회를 조성하지 말고 국민을 위하고 만사에 소통할 수 있는 국회를 조성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현, 우리네 사회구조에서 소통(疏通)처럼 좋은 단어는 없는 성 싶다. 국민 스스로가 소통이라는 단어를 음미하면서 서로서로를 이해한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사회는 없을 듯하다. 소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물이 막힘이 없이 잘 통함이라고 나와 있다. 무엇보다 의사소통[意思疏通]은 참으로 좋은 생각들이 서로서로에게 전달되므로 삶의 활력소가 아닐 수 없다. 보통말로 의사를 소통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뜻을 상대에게 전하는가 하면 상대의 뜻을 자신이 받아들이는 말들이 오간다는 것이다. 이 때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서로가 답답함을 느낄 것이며 오해의 소지도 빚을 것이다. 가끔 필자는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또는 둘 이상의 사람들과 서로 의견이나 의사 따위가 잘 통하는 것을 지켜볼 때, 저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다는 것을 인식할 때가 있다. 물론 소통할 수 있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기 때문에 그 뜻이 이심전심으로 받아 들여졌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뿐더러 오해를 불러일으킬 경우가 다분하다. 소통은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만이 진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진정한 마음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양심을 자신 있게 표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위가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입장의 처함이 서로가 다를지라도 상호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무조건 남의 말과 주장을 잘 들어주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성품이 민중적 정서인 온유와 역사적 논증인 사실에 근거를 두면서 상대에게 말을 전할 때,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이야기하되 상대편의 입장과 마음도 헤아려, 함께 가는 것이 소통이다. 서로사이에 오해 없이 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높이면 절대 안 될 것이며 온유(溫柔)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어찌 보면 오늘날 한국인들은 여유보다 행동하는데 집중한다.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고 보기만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대부분의 일과 시간에 쫓겨 각박한 삶을 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문화와 자연이 풍요로운 곳에 가도 빅뱅 상태의 심리상태가 되기 쉽다.아무튼 소통은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목마름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는 국민을 섬기고 여야가 소통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소통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선출한다는 것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 길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 호남의 정서를 반영하면서 소통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산다화의 붉고 붉은 꽃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한 사회문화가 그립다. 푸른 잎사귀 속에서 붉은 마음으로 뭉쳐 그리움을 잉태하는 소통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산다화 피는 거리를 걸어보자.
    • 오피니언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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